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더 스미스 (문단 편집) === 결성 === 집에 틀어박혀서 [[오스카 와일드]], [[제임스 딘]]에 몰두하며 시와 평론을 쓰고 그것을 틈틈이 잡지에 발표하던 모리세이를 눈여겨 본 조니 마가 1982년 봄, 모리세이의 집에 쳐들어가서 같이 작사-작곡 콤비[* 지향점은 버블검 뮤직을 바탕으로 강렬한 가사를 쓰는 80년대 버전의 라이버와 스톨러][* 모리세이-조니 마 콤비는 훗날 [[롤링 스톤 선정 100대 송라이터]] 중 하나로 선정된다.]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1978년]]에 둘은 이미 [[패티 스미스]] 콘서트에서 만난적이 있었다. 조니 마는 모리세이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는데, 모리세이 자서전에 따르면 그 때 조니마가 모리세이에게 "네 목소리 재밌다 ''You've got a funny voice''."고 했기 때문에 모리세이는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마는 집에만 있는 모리세이와 친해지기 위해 모리세이의 지인인 스티븐 폼프릿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그와 모리세이의 집에 갈 수 있었다. 폼프릿은 모리세이가 조니 마에게 아무 관심도 없을거라고 예상했지만 예상과 달리 모리세이와 조니 마는 음악 취향에 공통점이 아주 많았는데, 둘은 [[펑크 록|펑크]]의 [[DIY]]적인 태도에 빠져 있었고 [[걸그룹]]과 [[로커빌리]] 음악의 열성적인 팬이었다. 조니 마가 자서전에 묘사하기를, 모리세이는 마를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좋아하는 [[싱글(음악)|싱글]]을 틀어보라고 했는데, 마는 60년대 걸그룹 The Marvelettes의 싱글 'You're The One'를 골랐고 그에 모리세이는 "Good choice."라고 얘기했다. 마는 그 싱글의 B-Side인 'Paperboy'을 틀었고 그걸 좋아한다는 표시로 따라 불렀다. 그리고 모리세이 역시 B-Side에 있는 곡을 더 좋아했다.[* 그 노래들은 주로 60년대 걸그룹들의 노래였다. [[펑크 록|펑크]]가 유행하던 시기였으므로 두 사람 다 '이런걸 집착적으로 좋아하는 놈이 나말고 또 있었다니.'라고 생각했다고. 그들은 [[스모키 로빈슨]]이 곡을 준 [[모타운]] 여가수들을 비롯해 샌디 쇼같은 영국 여가수도 열렬히 좋아해서, 데뷔 후에는 샌디 쇼와 몇 번 합동 공연과 텔레비전 출연 등을 같이했다. 하지만 모리세이는 수십년 후, 샌디 쇼와 함께 활동하면서 그녀가 자신이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게되었고 곧 우정이 깨졌다고 말했다. 이어 샌디 쇼가 너무 어린 나이에 성공해서인지 매우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사람이었고, 그럼에도 그녀는 훌륭하고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폼프릿에 따르면 모리세이를 만나고 오는 길에 조니 마는 단 한마디 말만 했다고 한다. "이건 [[미래]]야."라고. 대박을 직감한것. 이들은 곧바로 [[더 폴(밴드)|더 폴]]의 드러머인 사이먼 울스텐크로프트의 도움을 받아 함께 첫 데모를 제작하였다. 가을이 되자 두 사람은 밴드 이름을 더 스미스로 정했는데, 당시 유행하던, 프랭키 고즈 투 할리우드(Frankie Goes To Hollywood)[* Relax, Two Tribes라는 두 개의 대표곡이 있는데, 이 그룹은 이 두 노래로 '''당시 영국을 말 그대로 뒤흔들었다'''. 각각 5주, 9주 1위를 했는데 저 9주 1위는 [[Bohemian Rhapsody|보헤미안 랩소디]], You're the One That I Want 이후 최초로 초장기 차트인한 노래이며, Relax는 성적인 가사 때문에 BBC에서 방송 금지되어 [[스트라이샌드 효과]]로 유명해진 곡이다. 1984년 노래인데, 1984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하게 가사가 성적으로 직설적이다. Relax는 이외에도 11개국에서 싱글 차트 1위를 달성한 당시 유럽 최대 히트곡 중 하나이다.] 같은 긴 이름에 대항하여 간단하게 지었다고 한다.[* "Smith는 세상에서 가장 흔한 이름이니 거기엔 어떤 가치평가도 할 수 없다. 난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모리세이 / "난 이름을 [[롤링 스톤즈]]로 짓고 싶었는데 발음하기가 너무 복잡하더라고. 모리세이가 우리 이름을 결정했어." -조니 마] 그리고 베이시스트 [[앤디 루크]]와 드러머 마이크 조이스[* 앤디 루크와 마이크 조이스, 초창기 매니저였던 조 모스까지 모두 조니 마의 친구나 지인들이었다.]를 영입한다.[* 활동 초기에는 조이스가 들어오기 전 사이먼 볼스탠크로프트가 드럼을 맡거나, [[앤디 루크|루크]] 대신 데일 히버트가 베이스를 연주하기도 했고, 제임스 메이커라는 게이 댄서도 있는 등 멤버 교체가 있었다. 모리세이와 마는 볼스탠크로프트가 멤버로 있길 원했지만 그는 모리세이의 목소리가 마음에 안든다고 [[더 폴(밴드)|더 폴]]에 합류했다. 데일 히버트는 스미스의 게이 콘셉트를 좋아하지 않았고 모리세이와 마는 히버트의 연주를 맘에 들어하지 않아 그는 떠났다. 메이커는 모리세이의 친구였는데 마의 자서전에 따르면, 메이커가 무대에서 춤출 거라고 모리세이가 말했고 마는 그게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별일 아니었기(unnecessary but not a big deal) 때문에 받아들였다. 그러나 몇 번 공연한 뒤 해고했다.] 이후 모리세이와 마가 지난 해부터 틈틈히 만들어 놓은 곡을 가지고 데모를 제작하나 [[조이 디비전]]을 배출한 [[맨체스터]] 음반사 [[팩토리 레코드]]와의 계약은 불발되었다. 이와 관련해 모리세이는 2013년 자서전에서 [[팩토리 레코드]]의 사장인 토니 윌슨이 [[버즈(미국 밴드)|버즈(The Byrds)]] 노래 들고 장난치지 말라고 한 소리 했다고 주장했다. [[https://www.bbc.com/news/entertainment-arts-24562454|#]][* 스미스는 특유의 찰랑거리는 기타 사운드 때문에 외부에서 버즈와 엮이는 일이 너무 잦았고, 토니 윌슨은 스미스 해체 시기에도 멤버들 속을 긁는 발언을 한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토니 윌슨은 다른 주장을 했는데, 당시는 레이블 설립 3년차였으며 [[뉴 오더]]의 [[Blue Monday]]가 히트하기 전으로, 레이블의 상황이 너무 나빴기 때문에 스티븐(모리세이)과 그의 훌륭한 밴드가 다른 레이블에 가길 바랐다고. [[https://www.youtube.com/watch?v=RfgW_hBLj0U|#]] 또한 윌슨에 따르면, [[팩토리 레코드]]의 또다른 사장인 Rob 또한 스미스를 좋아했고 스미스가 제2의 [[비틀즈]]라고 동네방네 얘기하고 다닌 사람이었지만 정작 Rob이 들은 스미스의 데모가 끔찍하게 구려서 계약을 거절했다며, 괜찮은 데모를 가져오면 계약을 맺었을 것이라 덧붙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fQfUzAheiLw|#]] 이후 행동력 있던 조니 마가 데모를 가지고 상경해 런던의 인디 레이블 러프 트레이드(Rough Trade)에 쳐들어가서 몇 시간을 기다려 사장 제프 트래비스를 만난다. 마는 트래비스를 만나자마자 "이런 거 어디서도 못 들어봤을 겁니다."라며 데모를 건네줬다고. [[https://www.youtube.com/watch?v=J2-zBfHVdvc|#]] 스미스는 데모를 좋게 들은 러프 트레이드와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계약상 스미스는 모리세이와 마 두 명이었고, 러프 트레이드와의 정식 계약서에 서명한 멤버 역시 모리세이와 조니 마 둘 뿐이었다. 러프 트레이드는 이전에도 인디 레이블로 명성이 있었으나 스미스 덕분에 크게 성장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